조선왕조 500년 5

조선왕조 실록 9대 성종(1469년~)

조선의 9대왕 성종의 관한 역사이야기 입니다. 성종 강정 인문 헌무 흠성 공효 대왕(成宗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의 휘(諱)는 이혈(李娎)이니 덕종(德宗)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인수 대왕 대비(仁粹大王大妃) 한씨(韓氏)로서, 좌의정(左議政) 서원 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이다. 천순(天順) 원년 정축년 7월 30일 신묘(辛卯)에 왕은 동저(東邸)에서 탄생하였는데 이 해 9월에 덕종(德宗)이 훙서(薨逝)하니, 세조(世祖)가 왕을 궁중(宮中)에서 양육하였다. 왕은 타고난 자질이 특별히 준수(俊秀)하고, 기상과 도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므로 세조가 대단히 사랑하여 신사년 정월에 자산군(者山君)으로 봉하였다. 왕이 일찍이 동모형(同母兄) 월산군(月山君) 이정(李婷)과 더불어 궁중(宮中)의 무하(..

지식정보 2022.05.31

조선왕조 실록 7대 세조(1455년~)

조선왕조 실록 7대왕 세조의 역사 기록입니다. 세조 혜장 승천 체도 열문 영무 지덕 융공 성신 명예 흠숙 인효 대왕(世祖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의 휘(諱)는 유(瑈)이요, 자(字)는 수지(粹之)이다. 세종 장헌 대왕(世宗莊憲大王)의 둘째 아들인데 어머니는 소헌 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고, 명나라 영락(永樂) 정유년 에 본궁(本宮)에서 탄생하였다. 선덕(宣德) 무신년 6월 정유에 처음으로 진평 대군(晉平大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고쳐서 함평 대군(咸平大君)으로 봉해졌고, 다시 진양 대군(晉陽大君)으로 고쳤다가 또 수양 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쳤다. 증 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윤번(尹璠)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곧 자성 흠인 경덕 선열 명순 원숙 휘신 혜의 대왕 대비(慈聖欽仁景德宣烈..

지식정보 2022.05.26

조선왕조 실록 4대 세종(1418년~)

조선의 4대왕 세종의 역사입니다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世宗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의 휘는 도(祹)요, 자는 원정(元正)이니,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의 셋째 아들이요, 어머니는 원경 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이다. 태조(太祖)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漢陽) 준수방(俊秀坊) 잠저(潛邸) 에서 탄생하였으니, 명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홍무(洪武) 30년이다. 영명(英明) 강과(剛果)하고, 침의(沈毅) 중후(重厚)하며, 관유(寬柔) 인자(仁慈) 공검(恭儉)하고, 또 효도하고 우애함은 천성이 그러하였다. 태종 8년 무자 2월에 충녕군(忠寧君)으로 봉하였고, 우부대언(右副代言) 심온(沈溫)의 딸과 결혼하여, 그를 경숙 옹주(敬淑翁主)로 봉하였다. 13년 임진 5월에 충녕 대군(忠..

지식정보 2022.05.25

조선왕조 실록 3대 태종(1401년~)

조선의 3대왕 태종의 이갸이입니다 태종 공정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의 휘(諱)는 이방원(李芳遠)이요 자(字)는 유덕(遺德)이니, 태조(太祖)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공정왕(恭靖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어머니는 신의 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이다. 원(元)나라 지정(至正) 27년,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6년 정미 5월 16일 신묘에 함흥부(咸興府) 귀주(歸州) 사제(私第)에서 탄생하였다. 한씨(韓氏)가 점치는 사람[卜者] 문성윤(文成允)에게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 사주(四柱)는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점장이[卜人]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 하였다. 남은(南誾)이 매양 태종(太宗)을 보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하늘을 ..

지식정보 2022.05.25

조선왕조 실록 1대 태조 (1392년~)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잘아는듯 잘모르는듯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단어입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 지금부터 1대 태조부터 25대 철종까지의 실록에 관해서 포스팅을 해보려 합니다.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왕위에 올랐다. 이보다 먼저 이달 12일에 공양왕(恭讓王)이 장차 태조의 사제(私第)로 거둥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태조와 더불어 동맹(同盟)하려고 하여 의장(儀仗)이 이미 늘어섰는데 시중(侍中) 배극렴(裵克廉) 등이 왕대비(王大妃)에게 아뢰었다. "지금 왕이 혼암(昏暗)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社稷)과 백성의 주재자(主宰者)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하기로 일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남은(南誾)이 드디어 문..

지식정보 2022.05.25